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 것이 진실인가?
데카르트부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제기한 질문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예로부터 시각적 정보는 다른 어떤 정보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특히 범죄 행위에 대한 증언이나 용의자에 대한 판단 등에 있어서 목격자의 의견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발생하면서 '본다'는 행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곤 했습니다. 마케팅이란 분야에서만 한정지어 생각해도 왜 소비자들이 광고나 기업의 여타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그 원인을 밝혀내고자 하는 연구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은 대부분 목격자나 소비자의 기억과 관련된 연구에 국한되었습니다. 기억이란 행위가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져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결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그런데 단순히 기억이 문제가 아니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가 이러한 생각을 뒤짚었습니다. Christopher Chabris와 Daniel Simons라는 심리학자는 독창적인 실험법을 통하여 이를 밝혀냈습니다.
그들의 실험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검은색 옷을 입은 3명과 흰색 옷을 입은 3명의 사람들이 같은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농구공을 패스하는 짧은 영상을 제작한 후 실험 참여자들에게 그 영상을 제시합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실험 참여자들에게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 번 패스하는지 숫자를 세라고 합니다. 아래 영상은 그 중 하나입니다.
영상이 끝난 후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패스 횟수가 몇 번인지 물어봤습니다(위 영상의 정답은 15회입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혹 이 영상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해는가?' 그리고 좀 더 정확히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혹시 고릴라를 보지 못했나요?'
수 백 회의 실험 결과는 이후 수 년 간의 논쟁을 이끌었습니다. 상당 수의 피험자들이 고릴라 영상을 못봤다고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화를 냈고, 어떤 이들은 영상이 바뀌었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보는 것과 지각하는 것은 다르다
인간은 하루에도 수 십 만 개의 정보를 봅니다. 하지만 망막에 투과된 정보가 모두 뇌에 지각되는 것은 아닙니다. 뇌는 무한대의 용량을 갖고 있지만, 무한대의 정보를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위 실험에서도 모든 피험자들은 동일한 영상을 보았지만 '숫자를 세라'는 과제에 대해 집중함으로써 어떤 이들은 분명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릴라를 지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들이 본 정보 중 패스한 횟수 이외의 것들은 지각되지 않은 정보로 뇌 어딘가에 묻혀버린 것이죠.
기업들의 광고나 여타 커뮤니케이션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를 매체에 집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TV나 라디오, 옥외 등에 게시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지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다는 행위가 광고 효과를 담보하지 않는 것이죠(그런 의미에서 지금과 같은 시청율 중심의 TV광고 효과나 청취율/유동인구 기준의 라디오/옥외 광고 효과는 그리 의미 있는 정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밋밋한 크리에이티브, 그저 그런 광고 카피로는 고객에게 지각되기 힘든 것입니다. 많은 광고주들이 지나치다는 이유만으로 버리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선택적 지각 때문입니다.
광고 혹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독창성이 중요한 이유임을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독창적이고 인상적이지 않으면 인간의 주의를 끌기 힘듭니다.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광고 속에서 다르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입니다.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닌 것이죠.
Copyrights ⓒ 2013 녹차화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