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브랜딩/Technology

거리 브랜딩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속빈갈대 2013. 4. 12. 02:00

거리 브랜딩. 


최근에 지자체나 지역 공동체 등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주제입니다. 특정한 지역이나 거리에 대해 브랜드를 하는 활동인데 외국에는 자연스럽게 공간이 브랜드화된 곳들이 꽤 존재하죠.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뉴욕의 소호거리, LA의 헐리우드/로데오 거리 등이 유명합니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종로, 명동, 홍대, 압구정, 강남역, 광주의 금남로, 인천의 월미도 등이 나름대로의 독특한 취향과 색을 품고 있습니다.


특정한 거리가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빚어지는 역사가 쌓여야 합니다. 즉, 자연스레 그 거리를 오고 가는 특정한 시민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행동양식, 기호, 취향이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 정체성에 따른 상점, 시설물, 장식 등이 결합되어 거리의 브랜딩이 완성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홍대 거리는 20대로 대변되는 유동인구와 그들이 향유하는 클럽, 라이브 공연, 소규모 갤러리, 개성 강한 주인이 운영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무명 디자이너 숍, 버스킹이 십 수 년간 축적되어 지금과 같은 자신만의 색과 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락카페가 클럽이 되고, 어두컴컴한 카페는 채광창이 넓어졌고, 양식 레스토랑은 이태리/지중해 등 다양한 이국 음식을 취급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미시적 변화는 늘 있어 왔지만 홍대 거리가 주는 정체성은 꾸준히 일관된 어떤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요.


거리 브랜드의 주인은 시민


그런데 많은 지자체들은 자기들 관할 지역 내에 대중들이 선호하는 거리가 형성되면 거기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지역 이벤트를 실행한다든가 관이 주체가 되는 행사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이 오래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지기 일쑤이고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특정한 거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공간을 이용하고 사랑하고 자주 방문하게 되는 시민들과 거리를 형성한 상가 사람들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문화를 발산한 창조자들, 그 문화를 적절한 상업적 맥락에서 수용한 상가 사람들, 그 문화를 향유하고 즐긴 방문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브랜드가 되고 문화는 살아 숨쉬게 된 것인데 그곳을 인위적으로 어떻게 만든다고 해서 될리가 없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라는 행사가 있었죠. 문화체육관광부가 홍콩의 그랜드 세일을 베껴와서 국내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명동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행사인데, 노력을 기울이신 공무원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정말 이런 행사를 왜 하는가란 평가만 남더군요.


(사진 출처: KBS월드뉴스)


뭐 그렇게 혹평하기에는 아직 이를지도 모릅니다. 올해로 고작 3회 진행된 행사니까요. 게다가 언론에서는 전년보다 매출이 신장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단 이 행사는 국내인 대상보다 외국인 대상의 행사에다가 독특한 문화가 살아 있다기 보다는 그저 세일을 홍보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까요. 과연 이런 식으로 명동이라는 거리가 포지셔닝되어도 좋은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관의 역할은 거리 정체성을 지키는 것


사실 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해외에서는 지자체가 나서서 거리의 생명력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파리나 로마, 피렌체 등은 거리의 오랜 건물들을 함부로 개보수조차 못하게 합니다. 건물들이 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거리의 유명한 상점들은 임대차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건물주라고 해도 함부로 계약 해지나 임대료의 과도한 증액 등을 요구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명 상점들이 그 거리의 정체성이자 생명력을 부여하는 존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국내의 관련 법규나 임대차 법률 등은 매우 미진한 면이 있습니다. 아직은 거리의 정체성을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조금이라도 거리가 유명세를 타면 건물주들은 임대료 상승을 요구하고 그것이 부동산 업체를 타고 주변으로 확산되어 전체적으로 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점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설명. 홍대 앞 재즈1세대 신광웅씨가 운영하던 문글로우(좌), 폐업을 알리는 문구(우))


이런 이유로 홍대 앞에는 수 많은 상점들이 사라졌고, 현재 가로수길은 기존 상점들이 사라지고 유명 대기업 브랜드 상점들이 속속 입점해 있습니다. 삼청동, 부암동 등 다른 수많은 거리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기사 참조: "가로수길로 외출하는 백화점 브랜드들")


브랜드는 돈으로만 만들 수 없습니다. 할리 데이비슨, 애플, 코카콜라 등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돈이 아닌 마음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거리 브랜드 역시 마찬가입니다. 그 거리를 사랑하고 거기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거리 브랜드입니다. 지금처럼 '돈 되는 장사'의 대상으로 거리가 소비된다면 얼마 안가 전국 거리는 거의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화된 거리가 될 것입니다.


경제민주화, 골목상권 등 여러 가지 정치적 담론이 난무합니다. 그런 거대 담론도 좋지만 전 좀 작은 부분부터 실현 가능한 활동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미시적인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서로 다른 정체성의 거리들이 전국에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 국가 브랜드나 경제적 측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거리 브랜딩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시민들의 여행도 보다 활성화되고 모두가 한 곳이 아닌 서로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다양한 거리 브랜드가 우리 삶 속에 존재할 때 그곳에서 살아가고 공유하는 모든 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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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나니(4/10)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시되더군요. ("홍대앞, 이젠 패션, 뷰티 메카로...임대료 강남역 수준 육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