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시장
마케팅이란 "기업의 독특한 가치 창조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 핵심적 내용이 많은 마케팅 서적이나 학교 과정에서 제대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기업 현장이나 학교 강의실에서 마케팅은 그저 기능적인 활동으로 소개됩니다. 고객조사, 상품기획, 광고, 패키지 디자인 등. 때로는 마케팅과 영업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의 목표가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같은 재무적 성과나 시장 점유율, 선호도 등과 같은 시장경쟁지표로 설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죠.
수단과 결과의 혼돈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같은 재무적 성과나 시장 점유율, 시장순위와 같은 경쟁 지표는 기업이 마케팅을 통해 즉, 독특한 가치를 시장에 제공하여 얻는 결과일 뿐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자산이란 돈을 많이 벌었는가 벌지 못했는가를 설명할 뿐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함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무적 성과나 시장 지위가 여전히 마케팅의 목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이나 학교가 여전히 마케팅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숫자로 표현이 가능한 매출, 영업이익, 시장점유율 등이 이해하기 편리한 지표이긴 합니다. 게다가 기업이 창조한 독특한 가치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얻은 것이란 측면에서 무시할 수 있는 지표는 아닙니다. 하지만 숫자에만 집중하면 정작 본질인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가치> 지향적 관점과 <숫자>지향적 관점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명확한 예를 우리는 애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Apple의 iPod 이야기
지금이야 아이팟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MP3플레이어입니다. 지금까지 누적 판매대수가 2억대 이상에 지금도 그 판매 추세가 꺽이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팟은 처음부터 판매가 폭발적이었을까요? 위의 누적 데이터를 보더라도 1세대 아이팟이 출시된 2001년 10월부터 2002년도까지 40만대 수준이었습니다. 출시 1년 동안 40만대라...솔직히 북미와 유럽에 출시된 제품치고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수치입니다.
만일 애플이 숫자 지향적 관점의 기업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국내 기업 여건에서 한 제품을 출시 했는데 1년 넘게 40만대라면, 여러분 기업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 예로 아이리버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리버는 크래프트로 당시 미국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만에 미국 MP3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역시 한국인은 뭐든 빨리, 빨리죠.
그러나 애플은 이런 숫자 놀음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의 객체 지향적 관점이 iOS를 만든 것처럼, 그들은 아이팟의 가치혁신에 집중하고 있었죠. 그 결과가 바로 iTunes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때 아주 중요한 가치혁신 하나를 애플은 더 했습니다. 동시에 선보인 3세대 아이팟(2003년 4월)에 Mac과 Window 플랫폼 모두를 지원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입니다. 이로서 윈도우 PC 사용자들도 손쉽게 아이팟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고, 이 때부터 아이팟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합니다.(2003년 하반기동안 64만대 판매)
애플(이라고 쓰고 스티브 잡스라고 읽습니다)은 아이팟 가치를 'MP3 파일을 재생해 보고 듣는 전자기기'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 접근할 수 있고 바로 찾아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쥬크 박스'라고 보았던 것이죠.
시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개념이 <시장>입니다. <시장>은 대단히 상대적이고 조작적인 정의입니다. 기업이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시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마케팅 서적이나 강의실에서는 시장을 제품/서비스의 형태로만 설명합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그런 정의는 기업의 가치혁신을 제약할 뿐입니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형태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에 기초한 <시장>을 규정해야 합니다.
[버진 스토리]
버진은 매우 독특한 브랜드입니다. 아커 교수의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듯이 기존 주류에 대항하고, 즐거움을 위해서 도전하는 브랜드 에센스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버진이 전통적인 시장 정의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항공사든, 레코드샵이든, 열차든, 호텔이든 기존의 방식과 달리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파고 들 수 있는 시장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다각화를 하면서도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
기업이 가치로서 시장을 규정할 때, 시장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국내 통신사들은 여전히 시장을 '음성 및 데이터로 의사소통을 하려는 개인, 가구 및 집단'이라고 규정합니다. 사실 이것도 제가 3사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갖고 가공한 개념이죠. 실제로는 이보다 단순하게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개인, 가정 및 회사'가 보편적입니다.
이런 식의 시장 정의가 이해하기 편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장 정의는 기업의 가치를 매우 단편적으로 제한시킬 뿐입니다. 위의 시장정의에 근거한다면, 통신사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음성 및 데이터로 하는 의사소통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신사들은 자신들이 빠르다, 전국망이다. WiFi가 많다 등을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삼성전자와 애플입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본부는 '최고의 스마트폰'을 추구합니다. 그들의 시장은 <스마트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넓은 화면(갤럭시 노트), 가장 빠른(갤럭시S3 쿼드 코어), 가장 밝은 화면(AMOLED), 펜으로 쓴다(S펜)을 강조합니다. 최근에는 Design for Human이라고 해서 보다 한 차원 높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의 활동을 보면 추구하는 가치는 아직 기술적입니다.
이에 반해 애플은 전혀 다른 시장정의를 내렸죠. 사실 아래의 동영상에서 보여지듯이,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모바일폰+인터넷 네비게이션 디바이스>라는 우스갯 소리를 했지만, 스마트폰을 재정의했죠. '누구나 휴대하고 자유롭고 편하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바이스'라고.
시장 정의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
마케팅에 대한 새로운 시각처럼, 시장 정의에 대한 새로움이 필요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기존처럼 Smart Follower가 아닌 Innovative Leader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시장을 규정(창조)하고 적극적으로 그 시장을 키워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이 하는대로, 혹은 단순히 제품/서비스가 보여지는 기능적 특징 위주의 시장 정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시장을 동질적으로 본다면 기본적으로 동질적인 경쟁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이나 서비스 보다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Copyrights ⓒ 2012 녹차화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