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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브랜드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자주 겪게 되는 일이 '중장기 계획'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마케팅 전략에 관여하는 부서나 실무자들도 종종 윗선으로부터 이에 대한 요구를 듣게 됩니다. 이런 경영진의 요구가 하부로 전달되면 난리법석을 떨게 마련이죠. 중장기니까 3~5년 정도 향후 시장에 대해 예측을 하고 거시적 변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고객 혹은 기술 트렌드에 대해 전문 보고서를 찾아보고 경쟁사들의 주요 전략은 어디로 진행될지 공식/비공식 루트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활동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 쓰기.

 

직장에서 이와 같은 작업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왜 이것이 소설 쓰기라고 불리는지. 그것은 누구도 3년이든, 5년이든 그 이후 얼마든 예측 불가능한지를. 이제는 산업군이 반드시 IT가 아니더라도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기존 FMCG 시장도 IT기술이 도입되면서 과거처럼 정적인 영역이 결코 아닙니다. 보수적인 금융시장? 이쪽은 더 심하죠. DB시스템과 전산화가 가장 정교하게 접목된 시장이라 속도의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이란 거의 허구에 가깝습니다. 시장이나 고객이 내일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세상이죠. 게다가 이런 모습은 동일 시장 내에서 경쟁하는 경쟁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잘 모르는 경쟁사로부터 그들의 미래 전략을 어떻게 얻어내고 분석하는지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중장기 전략 과제를 받으면 이런 상태가 되죠...어쩌란 말이냐)

 

일본의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교세라와 KDDI 경영을 담당할 때 IR 콘퍼런스나 기자회견에서 '중장기 계획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런 것은 없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볼까요.

 

“교세라는 5년, 10년 앞을 내다보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5년, 10년처럼 경영합니다.”

                                                                                                                                                                  -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著

 

여기서 잠깐. 이나모리 가즈오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까요. 과거는 책을 통해 보시고 최근 JAL 회생만 보면 이렇습니다.

 

2010년 1월 2조 3000억엔에 달하는 빚을 끌어안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JAL은 당시 총리인 하토야마의 삼고초려 끝에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을 최고경영자로 맞이합니다. 그는 무보수 경영, 3년만 일한다는 조건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취임 즉시 사업장 1/3 폐쇄, 직원 1만며명 정리해고를 단행하였고, 퇴직연금 30% 삭감, 적자 노선 45개 폐지, 수익성 높은 미국-일본 노선 강화 등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2009 회계연도에 1337억엔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JAL은 2010년 1884억엔 영업이익, 2011년 3월 법정관리 해소, 9월 도쿄증권거래소 재상장, 2012 회계연도 1860억엔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3월 6일 JAL 회장직에서 사임했습니다

 

 
이런 실적을 남긴 경영자가 한 말이니 위의 중장기 계획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전략은 중장기 예측이 아니라 현재 시점의 실행력

 

국내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흔한 일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문제가 생긴다 ▶ 문제를 규명한다 ▶ 여러 원인 중 주요한 우선순위 목록을 작성한다 ▶ 담당부서 및 경영진에 개선의 의견을 묻는다 ▶ 예산 등 여러 이유로 부정적 답변을 듣는다 ▶ 큰 투자 없이 가능한 목록으로 재작성한다 ▶ 경영진이 승인한다 ▶ 실행한다 ▶ 큰 변화가 없다 ▶ 다시 문제를 규명한다...

 

농담같은 얘기지만 사실입니다. 근본적인 개선책은 항상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조금만 비용투입이 발생해도 검토만 수 십 번 하게 됩니다. 실행은 사라지고 보고서만 남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여러 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본질적인 개선을 필요한 그 순간에 실행했는지가 자주 나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중장기 계획이 필요 없는 이유는 바로, 지금, 필요한 순간,에 즉각적인 실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혼자만의 철칙이 아닌 기업 전체의 문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어떤가요? 지금도 이 늦은 시각에 혹시 하반기 전략 시나리오를 쓰고 있거나 중장기 미래전략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3년내 브랜드 자산 강화를 위한 단계별 전략을 수립하고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현재 시점의 문제점들이 충분히 잘 수정되고 있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내년에 똑같은 과제를 다시 받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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