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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봐야겠군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 가자 열 받는 경우가 한 가지 있습니다. 정의롭지 않거나 공정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할 경우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경우엔 아닙니다. 사실 조직과 한국 기업을 둘러싼 문화사회적 환경이 그런 일들을 낳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기는 하죠. 하지만 열받지 않습니다. 가끔 양심에 따라 바른 소리를 하는 정도로 소심하게 반항할 뿐이죠.
정말 열받는 것은 제가 한 일에 대해 무의미하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중요한 것처럼 출발하더니 그 과정의 어려움이나 성실함은 둘째치고 결과가 나왔을 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상사의 말을 듣거나 이미 어떻게 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들었을 때, 과연 브랜드 관련 마케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한 입장에서 이만큼 허탈하고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런 수준에 다다르게 됩니다...]
리더쉽이니 동기부여니 하는 말이 참 많습니다. 내부 브랜드 프로그램 차원으로도 많이 실행하는 이런 프로그램들. 하지만 아무리 이런 프로그램을 많이 도입하고 직원들을 참여케 하더라도 이런 경우가 많으면 아무 짝에 쓸모 없게 됩니다. 게다가 이것이 저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여러 사람들이 실제로 현업에서 경험하는 것이며, 저와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경우도 있더군요.
인간은 노동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Dan Airely, Emir Kamenica 그리고 Drazen Prelec이란 세 명의 심리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 발표한 논문으로 "Man's Search for Meaning: The Case of Lego"가 있습니다. 2008년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에 실린 논문입니다.
이들의 논문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레고 블록 시리즈 중 하나인 '바이오니클' 조립을 과제로 준 것입니다. 각 과제를 완성할 때마다 보상으로 돈을 지급하는데 조립하는 숫자가 증가할수록 지급되는 금액은 줄어드는 형태입니다(가령 첫번째 것은 2만원, 두 번째 것은 1만 8천원...뭐 이런 식이죠). 매 과제 완수 때마다 연구원이 진행 여부를 묻고 진행 의사를 밝히면 다음 과제를 주는 것입니다.
[ 바이오니클 시리즈. 약 3~40개 부품으로 이루어진 간단 조립품입니다 ]
이 실험에서 횟수가 반복될 때 지급 금액을 줄여서 주는 이유는 경제적 동기 이외의 과제 수행 동기를 자기 스스로의 의미 부여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취감, 재미, 실력자랑 등 심리적 만족 차원에서의 동기로 인간이 과제를 수행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실험에는 한 가지 통제 조건이 있습니다. 비교 집단(Meaningful Group)은 아무런 조건 없이 과제를 계속 수행하였지만, 통제집단(Sisyphus Group)은 매번 과제 완성시 다음 과제로 넘어갈 때 방금 완성한 '바이오니클' 조립품을 연구원이 해체한 것입니다.
[ 방금 조립한 실험참가자 앞에서 이렇게 연구원이 다시 분해하여 박스에 넣는 것이죠]
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하기 그래프는 두 집단간 조립 횟수 결과입니다.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아무런 부정적 피드백 없이 조립을 진행한 집단은 평균 10.6개를 조립했고, 받아간 보상금도 14달러 40센트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조립한 바이오니클이 바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본 집단은 평균 7.2개를 조립했고, 평균 11.52달러를 받았습니다. 앞의 그룹은 1달러도 안되는 조건으로 조립하는 환경이 주어져도 65%의 사람들이 조립을 기꺼이 했지만, 뒤의 그룹은 고작 20%만이 조립을 계속 했습니다. 즉 적은 경제적 동인에 의해서도 의미를 통해 자기 동기화를 한 이들은 기꺼이 작업을 계속 했다는 것이 됩니다.
상식을 지키면 직무 동기가 향상된다
위 논문은 매우 독창적이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매우 상식적이죠. 사실 기업에서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해야 할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직원들의 일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시하거나,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괜히 어려운 동기부여 프로그램이니, 창의성 경영이니, 인문 경영이니 하는 비용 드는 별도의 활동은 필요 없습니다. 직원들이 자기 일을 의미 있는 것이라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동기화 정책이죠.
글을 쓰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군요. 여하튼 직장에서 힘들어하는 모든 마케터 여러분, 힘 내시고요...힘들고 왜 하는지 의문이 드는 일을 접할 때, 속으로 생각해보세요. 최소한 이 회사, 혹은 고객 중 누군가는 이 작업에 대해 긍정적 의미 부여를 할 것이라고.
아자아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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