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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의 인문학 구조조정, 박용성의 중앙대 구조개혁"


위의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은, 한국은 갈라파고스 정도가 아니라 퇴행의 사회같다,는 것이다. 전근대적 사고를 지닌 산업화 시대 의사결정자들이 한국의 인적 자원을 어떻게 파괴시키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사업 이전에 순수 학문의 가치가 필요다


굳이 어려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성공의 유무를 떠나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여러 강연장에서 얘기했다.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이 애플이라고, 서체(캘리그래프) 수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Mac OS는 탄생할 수 없었음을. 반드시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하더라도 기업의 수 많은 현장에서는 융합적 지식에 근거한 혁신이 쉴새 없이 탄생하고 있다.


몇 년 전 인텔 R&D 부서를 이끌던 제네비에브 벨 은 IT출신이 아니라 인류학 박사였다. 그로 인해 인텔은 TV와 PC 사용자 경험의 차이와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였다.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역시 과거 패밀리카, SUV시장 진입시 기존의 경쟁사 차량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이나 벤치마킹, 소비자 설문조사 대신 타겟 소비자 집단에 대한 심층 인터뷰, 다이어리 리포트(응답자들이 일기 형식처럼 일상을 기록하는 조사 방법), 인류학자/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관찰팀 파견 등을 통해 밝혀진 소비자들의 기호와 취향에 근거해 시에나와 오딧세이 등 성공한 차량을 출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사업의 기반이 된 지식들도 대부분 그렇다. 인터넷 역시 국방부 연구 프로젝트에서 탄생했고, 컴퓨터 역시 탄도 계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즉,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히 지적 호기심에서 태동한 과학적 사실들과 사업은 별개라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순수 학문에서 등장한 과학적 사실들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기업가들의 영역이다.


네트워크 사회에 적합한 융합형 인재


그런데 현대 사회는 제품과 서비스 구조 자체가 복잡해졌다. 단순히 철을 갈아서 바늘을 만들어 팔던 시대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융합형 인재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사실 과거부터 기업에서는 순환 근문제라고 하면서 기업의 다양한 부서를 경험시켜 Generalist를 육성시켜왔다. 하지만 이것은 융합형 인재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전천후 사원 육성이란 표현이 더 정확한 것 아닌가 싶다. 이에 반해 융합형 인재란 다양한 지식과 배경을 갖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인물이다. 예를 들어 2천년대 중반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 노키아 1100 시리즈는 기존 휴대폰 개발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었다. 더 큰 디스플레이, 배터리, 다양한 부가기능을 휴대폰에 탑재하는 대신에 정해진 가격에 맞춰 타겟층(대부분이 농부들이었다고 함)에 적합한 기능-날씸 알림, 양방향 문자전송, 강력한 라이팅, AM/FM 라디오, 단일번호에 복수 이름 입력(대부분 빈촌이기에 한 마을에서 여러 명이 하나의 휴대폰을 공유함)-외에는 모두 제외했다고 한다. 이 역시 디자인, 전산 프로그램밍 기술이 인류학, 사회학, 인지과학 등과 만나 이룩한 융합형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의 대기업 총수(혹은 대학 학장?)와 교육 행정 수장은 취업 이전에 기업에서 필요로한 지식을 습득하는 장소라고 대학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도 경영학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솔직히 한심하다.


기업에 입사해 경영학 용어나 개념 정도 말해도 이해하는 신입사원이라면 의사소통에 편리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그런 지엽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 기업에 절실히 요구되는 인재는 앞서 언급한 융합형 인재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지식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결과/산출물에 대해 왜 그런지 의문을 갖고,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제조경제, 서비스경제를 넘어 체험경제 시대로 진입하면서 미술과 음악, 체육/레저 등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더욱 중요한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의 교육시간 단축에 이어 대학에서는 아예 예체능 학과를 축소시키려고 한다니, 암울하다.


이런 산업화 시대 인물들의 교육정책 혹은 교육관은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경영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책에 나온 개념들을 교조적으로 암송하기만 하지 실제 현장에서 씨름해야 할 대상인 내부 직원, 고객, 관계사/협력사 직원, 의사결정자 들과 어떤 의사소통을 하고 상호작용을 하겠는가.


지금이라도 국내 대학교육이 단기적인 취업율 따위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학문 탐구로 나아갔으면 싶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근본적인 읽기, 쓰기, 그리고 독서 후 생각하기 등의 기본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십 수 년간 쌓인 그런 훈련이 인간다운 삶에, 그리고 기업의 현장에서 더욱 유용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지식은 회사 가서 쌓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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