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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잠시 알아볼 것이 있어 마케팅 교재를 뒤적여 보았습니다. 십 여 년 전에 나온 서적이나 올해 나온 서적이나 모두 동일하더군요. 환경분석에서 출발해서 STP를 거쳐 마케팅 믹스로 이어지는 마케팅 프로세스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과연 현실에서도 그런가

 

하지만 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한 사람이라면 분명 깨닫게 됩니다. 현실에서의 마케팅은 전혀 그런 프로세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현실의 마케팅은 단선적인 과정이라기 보다는 다층적인 활동들의 조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케팅 전문가, 교수들은 고객가치체인이니 마케팅 의사결정 프로세스니 하며 피상적인 도표로 학생들에게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사례를 주며 위의 과정을 전부 복기시키는 수업을 하죠.

 

  마케팅은 학문인가

 

마케팅은 어떻게 보면 변증법적 유물론에 가장 유사한 활동인 것처럼 보입니다. '정-반-합'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케팅을 실행해본 사람이라면 많이 느낄 것입니다. 기업에서 여러가지 분석과 검토를 통해 내 놓은 실행의 효과는 그 실행 자체의 힘보다 외부 요인, 즉 시장이 받아들이는 수준과 경쟁사의 대응 활동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니까요. 이것을 간단한함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럴 것입니다.

 

  성과 = f(자사 마케팅 * 시장요인 * 경쟁사 마케팅)

 

그런데 많은 마케팅 전문가, 교수들은 여기서 시장요인과 경쟁사 마케팅이 마치 불변 요소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는 오로지 자사 마케팅만이 성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그것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꼭,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마케팅은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소비자), 혹은 그 집단(시장)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마케팅에 대한 사례연구 및 성공사례는 인과관계가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들거나 일회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가득합니다.

 

  마케팅은 철학이다

 

기업의 마케팅은 학문이라기 보다는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법칙이나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장이나 주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정한 마케팅은 다른 기업에서 동일하게 복사해 똑같이 실행한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기업이 과거의 프로그램을 반복한다고 해도 예전과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 마케팅의 영역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의 함수에서 보더라도 자사 마케팅이 동일하다 한들, 시장이 변화하고 경쟁사의 것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마케팅은 가치에 대한 철학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시장세분화라는 것이 특정 기업에게 적합한 활동인가 아닌가, 왜 시장이 세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실제 시장세분화가 가능한 것인가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마케팅 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 교육이 힘써야 할 것은 가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업의 마케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고객들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전달하여 배타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지나치게 기술화되고 '~마케팅'으로 포장된 현란한 스토리텔링보다는 궁극적으로 자신만이 지킬 수 있는 고객가치를 발굴하고 표현해 낼 수 있는 생각과 실천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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