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콜라. 세상에 선을 보인지 100년이 넘은 음료. 마케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두 브랜드의 경쟁. 오늘은 콜라 마케팅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원래 Cola는 서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나무 이름입니다. 이 나무에 열리는 열매에 카페인 성분이 많이 내포되어 있는데 19세기 콜라 음료를 만들 때 이 열매를 이용해 음료 속에 카페인을 넣은 것에서 콜라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좌: 콜라 나무, 우: 콜라 잎과 열매)
국내에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만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수 많은 콜라음료가 존재합니다. 베스콜라(미국), 코폴라(체코), 텀스업(인도), 콜라 터키(터키), 스타콜라(팔레스타인), 기린/아사히 그린 콜라(일본) 등이 있습니다. 과거 국내에도 있었죠. 범양에서 제조한 815콜라. 외환위기 속에서 애국주의를 모토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지만 결국 2007년 범양식품의 부도와 함께 시장에서 사라졌죠. 그리고 당시 맛 평가에서 항상 1위를 기록했던 콤비 콜라. 이 역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지만요.
콜라의 탄생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Dr. John S. Pemberton(우측 사진 참조)이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시럽 형태로 제조해서 5센트에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 때 판매처였던 Jocob's Company의 Frank Robinson이란 직원이 이 시럽에 코카콜라 네이밍을 지었으며 로고타입까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가치를 알아보고 회사를 설립한 사람은 Asa Candler였습니다. 그는 펨버튼으로부터 지분을 구입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인데 그 때 코카콜라의 가치를 이해했던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펩시 콜라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인 1893년에 약사인 Caleb Bradham이 만들었습니다. 초기 펩시 콜라는 'Brand's Drink'라고 알려졌으나 1898년 지금과 같은 Pepsi Cola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펩시콜라 상표가 사용된 것은 1903년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그저 Coca Cola의 아류로 불린 것이며 당시 브래드햄이 펩시콜라 컴퍼니를 1898년 설립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 것입니다. 결국 1903년 상표등록 전까지 펩시 콜라는 Verbal 브랜드만 존재하는 제품이었습니다(좌측 그림: 펩시콜라 최초 등록 상표).
코카콜라, 역사를 쓰다
코카콜라는 콜라 시장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1891년 미시시피주의 Joseph A. Biedenharn을 통해 Bottling 방식의 사업 방식을 구현했습니다(코카콜라는 원액만을 공급하며 전 세계 각지의 병입 사업자들이 현지에서 그 원액을 병입, 유통, 판매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펩시콜라에서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업 방식이죠.
그리고 1916년 만들어낸 코카콜라의 컨투어병. 이는 코카콜라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건 공모전의 결과였죠. 코카콜라는 '어둠 속에서도 타사 음료와 손쉽게 구별될 수 있는 병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고, Root Glass사의 Chapman Root는 이 공모전 승리를 통해 자사의 병을 납품하고자 자사 디자이너인 Earl R. Dean 등으로 구성된 팀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나온 디자인이 바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고 미국 특허청에 등록되어 이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고 박물관에 전시까지된 컨투어병입니다.
또한 코카콜라는 1931년 광고에 산타 클로스를 등장시켰는데 이 모습이 현재 전 세계 표준 산타 클로스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산타 클로스의 이름과 이미지는 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1931년 코카콜라와 Haddon Sundblom이라는 화가가 만들어낸 산타 클로스는 코카콜라의 인기를 업고 즉각적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더욱 공고화 된 면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산타 클로스 신화의 많은 부분은 코카콜라의 몫인 것입니다.
이후 코카콜라는 1960년대까지 다양한 마케팅 활동과 전 세계적 보틀링 사업체제를 구축한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No.1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 것이죠.
펩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리더를 공략하다
코카콜라와 달리 펩시콜라의 20세기 초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1920년 선물거래를 통해 비싸게 구매한 설탕값이 폭락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어 결국 파산과 함께 브래드햄에서 다른 주인으로 바뀌기까지 합니다.
새로운 주인과 함께 펩시콜라는 기업회생을 위하여 1930년대 중반 저가전략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의 수준으로 확보하게 되지만 이때 얻게된 싸구려, 코크의 카피라는 이미지는 향후 약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기초를 다진 펩시콜라는 1950년대까지 전국적인 보틀링 사업 체계를 확립하고 글로벌 사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이 당시 펩시콜라는 획기적인 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소련에 최초로 론칭한 콜라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1959년 당시 사장인 도널드 켄들은 소련으로 건너가 당시 서기장인 후르시초프에게 펩시콜라를 시음케 하고 소비에트 정부와 펩시콜라 판매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아주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소련과 미국간 냉전 시대를 허문 역사적인 기록으로까지 묘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탄력을 받은 펩시콜라는 1963년부터 그 유명한 "Pepsi Generation"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당시 분석 자료들에 의하면 펩시콜라는 미국 전후 세대로 대변되는 베이비부머들이 부모세대와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세그멘테이션 분석에 근거하여 젊은 세대를 기존 세대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선보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수 년간 이 전략은 매우 효과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펩시 제너레이션은 지금까지도 간간히 이어져 오는 캠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도 코카콜라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거의 80:20으로 앞서고 있었고 코카콜라는 글로벌 시장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펩시콜라에서 전개하는 이러한 마케팅 캠페인에 대해 그저 아류들의 아우성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항상 변화하듯이 콜라 시장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2부에서 계속)
Copyrights ⓒ 2013 녹차화분 All rights reserved.
'마케팅&브랜딩 > Knowled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라 전쟁 그 후... (0) | 2013.04.15 |
---|---|
콜라전쟁 2부 (0) | 2013.04.08 |
변화맹시와 브랜드 로고의 변신 (0) | 2013.03.29 |
더 많은 정보와 평가가 투자수익을 향상시킬까? (0) | 2013.03.27 |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다 (0) | 2013.03.21 |
- Total
- Today
- Yesterday
- 브랜드
- 세대갈등
- 라이프스타일
- 수요음악산책
- 펩시
- 브랜드전략
- SNS
- 증강현실
- 역사
- 마케팅전략
- 포지셔닝
- 자동차
- 가치
- 세대전쟁
- 애플
- 행동경제학
- 맥주
- 코카콜라
- 브랜딩
- 쇼핑
- 혁신
- 트렌드모니터
- 태그를 입력해 주세요.
- 광고
- 마케팅의 역사
- 마케팅
- 빅데이터
- 경영
- 트렌드
- 스마트폰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