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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오찬호 지음
출판사
개마고원 | 2013-12-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대한민국 이십대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장면1. 어느 대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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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와 일베.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리고 마케터로서 십대와 이십대의 트렌드를 쫓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행동을 접하게 되었다. 왕따와 일베는 그 대표적인 행위였다. 처음에는 그저 어린 친구들의 일탈적 행위 정도로 치부했는데, 왠지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고, 어느덧 왕따와 일베는 사회의 구조화된 행태로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세대


오찬호가 쓴 위의 책은 이십대에 대한 탐색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강의실이란 현장에서 만난 각기 다른 이십대들이 에세이, 인터뷰, 술자리 대화 등의 방식으로 생생하게 그들 스스로를 말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놀랍다. 솔직히 그들과 나 사이에 이런 간극이 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책 속의 이십대들은 그냥 나쁜 성격의 일탈자들이 아니다. 일탈이란 그저 대중적 규범에서 살짝 벗어난 정도를 말할 뿐이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이십대들의 차별과 배제 행위는 일상이다. 성적에 따른 차별, 약한 자에 폭력성,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제. 그리고 이 일상적 행위는 그들의 가치 체계에 따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를 사회적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세대


그들의 차별과 배제를 합리화 하는 기제는 상징적으로 '수능점수'라고 말한다. 수능점수에 의해 일렬로 나란히 세운 위치가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이자 가치라고 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또한 세상에는 수 많은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며 어떤 가치가 더 우월한 것인지는 상황이나 조건, 기타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사회적 아젠다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다가도 자신들의 행위와 인식에 대해서는 강고한 합리화를 꾀한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세대 차이, 꼰대, 이상한 사람, 잔소리 등으로 치부한다. 이 지점에서 벽이 생긴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지점에서 소통을 멈췄다.


괴물을 만든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회적 현상의 원인은 언제나 한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 가장 큰 원인은 현재 그들이 직면한 사회구조 때문일 것이다. 1989년 전교조 운동을 시작으로 인간다운 교육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외적으로 학습 현장 시설물은 좋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한국의 교육 체계는 서울대라는 정점을 향한 순위매김 외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최근에는 대학 마저 기업 채용에 목을 매면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단일 철학과 가치를 쫓는 레밍떼가 되었다.


그런데 이거 참 웃긴다.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원한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고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단선적이고 비판의식 없는 인재보다는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기존의 틀을 뒤짚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일까? 기업들은 점점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대학이나 성적, 스펙 등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류 전형에서 간판을 보지만 그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또 하나. 90년대 중반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불거진 등록금 인상 저지 활동은 번번히 실패했다. 그로 인해 대학 등록금은 매년 물가 상승률의 2~3배가 넘게 상승했다. 이로 인해 점점 대학은 돈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검증되지 않은 재단들이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며 이십대들은 사회적 진출 이전에 돈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회적 구조는 우리들, 기성 세대들이 만든 것이다.


기성 세대의 반성과 먼저 손내밀기


최근 응답하라 시리즈와 무한도전 토토가가 90년대를 소환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대중들은 환호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환호는 모르겠지만 그 시대 등장인물들에게서 자신을 본, 그리고 자신이 즐겨 듣던 음악을 접하고 추억에 젖은 세대는 현재 십대 혹은 이십대의 부모 세대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라든가 '그 시절 음악은 여전히 훌륭해' 라는 소회가 인터넷에 넘쳤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 불편함도 있다.


무엇보다 그 두가지 현상은 당대 이십대들이 개인주의에 취하기 시작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등장 인물도, 어떤 노래도(지누션의 A-Yo는 제외) 사회와의 관계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나만을 바라보고 나의 길에 집중했다.


현재 괴물이 된 (십대를 포함해서)이십대는 그런 '나'만 바라본, 자기애에 빠진 90년대의 이십대가 일구어 놓은 밭에서 자란 씨앗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사십대로 기성세대의 중심에 선 세대가 먼저 손을 내밀고 늦었지만 사회를 바꾸는 시도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청춘이라 아픈거야>라든가 <재테크에 미쳐라>라고 위로하고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스스로 사회의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금개혁, 건강보험체제 개선, 대기업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 중심의 국가적 경제 지원 시스템 구축, 대학에서 기업 아르바이트 현장까지 철저한 갑을 관계 감시 및 지도 등.


무엇보다 333개(4년제 186개, 전문대 147개)나 되는 대학교에 대한 점진적인 정리와 학문 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 정상화, 고교졸업 중심의 취업 구조 개편이야말로 향후 세대 전쟁을 피하고 한국이 더 좋은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사회가 아니다. 끝도 없는 레밍 질주를 멈춰야 한다.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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