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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일간 소비자 이벤트 관련 일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장 이벤트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더군요. 몇몇 사람들의 책상머리에서 나온 발상은 여지 없이 현장에서 무너지고 매뉴얼보다는 즉흥적인 대응과 빠른 판단력만이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널드 노먼 박사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는 현대 기술은 복잡하다고 말합니다. 복잡한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며, 정말 나쁜 것은 혼란스러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 몇 일간 제가 겪은 상황에 정확히 일치하는 말입니다. 사실 어떤 일이든, 프로세스든, 제품이든 복잡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최근 단순함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글쎄요 정말 단순한 제품이 뭐가 있을까요? 아이폰? 아이폰이 정말 단순할까요?

 

도널드 노먼 박사는 애플 부사장인 레리 테슬러의 말을 전해줍니다. "시스템의 전체적인 복잡도는 항상 동일하다" 이 표현은 이후 '테슬러의 복잡함 보존의 법칙'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전 이 글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의문점을 해소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브랜딩이나 마케팅에 있어 프로세스적 접근을 취할 때 브랜드 매니저나 마케터는 어디서 균형점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 같은 것이었습니다.

 

복잡함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소비자인가 아니면 기업인가?

 

제품을 기획하거나, 서비스를 디자인하거나,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하거나 보상수리를 받기 위해 AS센터를 방문하거나 스마트폰 업그레이드를 위해 다운로드를 받거나...모든 소비 관련 행위에는 프로세스가 따릅니다. 심지어 제품을 구매한 후에도 그 조작법을 익히기 위한 프로세스가 필요하죠. 그럴 때 위에 테슬러 법칙이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전화ARS 서비스를 생각해보면, 기업 입장에서 가장 단순화한 구조는 기업이 디렉토리별로 설계를 하고 고객들은 전화를 걸어 불러주는 번호에 따라 버튼을 누르며 쫓아가는 방식이죠. 그런데 이것을 소비자에게 가장 단순화한 구조는 무조건 0번을 눌러 상담원과 연결하여 구두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상당히 많은 인력(과 그에 대한 관리)과 함께 고객의 모든 요구에 대한 답을 한 번에 제시할 수 있는 콜센터 응답 시스템과 인터페이스가 필요합니다.

 

위의 표현은 이런 트레이드 오프 관계를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기업(의 프로세스)가 단순해지면 소비자가 복잡해집니다. 소비자(의 행위)가 단순해지면 기업의 업무처리 방식(혹은 그들이 설계한 제품이나 서비스)이 복잡해집니다. 양쪽의 복잡함을 균형 있게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매니저나 마케터가 해야 할 일이죠.

 

여전히 먼 고객 지향적 생각

 

행사를 마치고 고객들을 차량에 탑승시켜 행사장이 아닌 원래 집결지로 보내야 하는데 아수라장이 되더군요. 그 원인은 기업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사가 흥행에서 성공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고객들의 행동 패턴과 무관하게 버스 운행 시간을 변경시킨 것입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많은 고객들이 서둘러 귀가하기 위하여 이동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붙잡아두려고 하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요.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기업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고객이나 소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가정하는 개념에 근거하여 으례 그렇겠지 하는 생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프로세스를 설계합니다. 그런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최근 IFA에서 LG전자가 발표한 옵티머스 패드 신제품 발표일 것입니다.

 

(출처: 전자신문)

 

원래 LG전자는 2011년에 옵티머스 패드를 시장에 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재고를 남긴 체 시장에서 쓸쓸히 퇴출되었고 그 후 오랫동안 LG전자는 태블릿PC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옵티머스 패드를 선보인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러자 기존 옵티머스 패드를 구매하여 사용하던 고객들이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출시 제품을 관리조차 하지 않던 기업이 갑자기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고 발표하니 그럴만도 하죠. 이것은 아직도 LG전자가 기업 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며 스마트 디바이스를 여전히 가전 제품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케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아이폰 등장 이후 국내 기업들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죠. 그래서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와 협업하거나 영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국내 제품의 외관은 많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품 내부에서 구동되는 기능이나 그와 관련된 서비스를 받기 위한 프로세스는 여전히 낙후된 느낌입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디자인을 외관으로만 국한해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 고객 지향적이지 못해서이기도 하고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브랜드 관점처럼 디자인도 외관을 넘어선 프로세스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객이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개선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외관적 가치는 그러한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빛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이란 그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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